<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942 슘페터
혁신은 창조적 파괴 과정이다.
창조적 파괴란 더 큰 가치를 위해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고경쟁력 있는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은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생산비를 낮추고 새로운 수요를 창조한다.
기업의 판매수입은 올라간다.
이에 따라 기업가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추구한 기업가는 역시 이윤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이윤은 기업가의 모험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혁신을 추진하는 개인이라고 명명한다.
기업가의 기능은 혁신수행을 통해 생산 방식을 진일보 시키는데 있다.
슘페터에게 자본주의란 자본가들이 열정적인 기사와 같이 행동해야만 발전의 계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추진력은 용감한 사람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전 재산을 걸 수 있는 사람들, 창의와 시험과 확장을 감행하는 기업가들로 부터 나오는것이다.
이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자본주의를 꽃피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가 자본주의의 밝은면만을 이야기 하는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장래를 최종적으로 평가하면서 '자본주의는 잔존할 것인가? 아니,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왜일까? 로맨틱한 경제학자 슘페터의 눈에 자본주의는 애초의 매력과 흥분에 휩싸인 마상 창술 시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이 마상 창술 시합은 긴장과 열광의 분위기를 잃고 무미건조하고 실제적인 하나의 사업이 되어 갔다.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은 드디어 경제 진보자체까지도 자동 기계화하여 발전의 추진력인 기업가의 역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독점기업에서 경제의 혁신이란 과거와 같이 어떤 기업가의 개인적 자질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기계화된 일상 업무로서 전문가의 손에 의해 사무실 책상위에서 행해진다.
자본가 정신도 기계화되어 혁신이 더이상 혁신이 될 수 없는 단계, 자본주의가 더 이상 도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는것이다.
결국 슘페터는 기업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질을 잃고 자본주의 체제를 사수하려는 정열이 사라지며 정신도 물질도 사회주의에 호의적으로 바뀌어 가면 지지자를 잃게 된 자본주의는 드디어 다른 체제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본주의의 여생에 관한 슘페터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그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평가는 우리 자손들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정확성이 어떻든 간에 슘페터의 생각은 우리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 에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 와도 같다' 고 했다.
자본가가 발전시킨 엄청난 생산력은 파괴적인 공황을 방생시키며 자본주의의 파멸을 재촉한다.
마르크스와 슘페터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붕괴 과정은 다르지만 이후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결론은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슘페터는 비민주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자기가 사상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사례를 인용한다.
그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가 미숙한 상태에서 등장한 소련형과
성숙한 자본주의하에서 등장한 사회주의로 나누고
영국식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슘페터는 민주주의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방식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최상의 정치 방식인 것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적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주의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무시한채 민주주의 그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이상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또 양자기 결합되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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